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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5. 19:16

피에르 빌라르, [금과 화폐의 역사 1450-1920](2000), 도서출판 까치(총 438페이지)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72912613

 

금과 화폐의 역사(1450-1920)

서유럽의 역사 속에서 금과 화폐의 원천과 그 역할이 어...

www.kyobobook.co.kr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라고 하더라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왠지 '궁합'이 맞지 않는 책이 있다고 생각된다.
(게으른 것을 변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쩝.)

지금까지 나에게 가장 궁합이 맞지 않는 책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의 [분자혁명(Molecular Revolution: Psychiatry and Politics)]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거금을 들여 세 번 샀지만 한번도 끝을 보지 못했다.
잃어버리기도 했고, 누군가가 들고 가서 주지 않기도 하고......
어쨌든 가장 궁합이 맞지 않았던 책이다.

그 다음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 책이 오늘 다 읽은 피에르 빌라르(Pierre Vilar)의 [금과 화폐의 역사 1450-1920(A History of Gold and Money: 1450-1920)], 도서출판 까치(2000)이다.
이 책을 다보고 다시 살펴보니 2003. 10. 16이라는 서점에서 찍은 도장이 찍혀있다.
예전 학교 서점 앞에서 할인하던 책을 산 것인데 결국 산지 10년만에 다 읽은 셈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문한 책이 오지 않아 읽을게 없어서 읽기 시작했다. 쩝.)

 

이 책은 피에르 빌라르라는 프랑스의 경제사학자가 쓴 화폐사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역자후기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경제사학자, 특히 화폐사학자로는 특이하게 맑스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물론 이 책의 원서가 처음 출간된 것이 1974년이기 때문에 그간 맑스주의적 시각을 가진 학자들이 많이 늘어났으리라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40년전의 이론이군. 10년 전에만 봤어도 30년전 이론이었을텐데...... 쩝.)

이 책의 제목으로 유추할 수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불환지폐'가 발전하기 이전의 15세기부터의 이야기라서 주로 화폐로서의 금과 은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물론 '태환권'이나 '신용화폐'에 대한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금속화폐'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이 책을 보면서 놀랐던 것이 몇 가지 있다.
지금까지 어렴풋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은본위제'와 '금본위제'의 경쟁이 서양과 동양의 경쟁에 의한 정치적인 판단에서 '금본위제'가 승리하게 된 것이 아니라, 금과 은의 생산량, 즉 금광과 은광의 채굴량의 변화 등으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유물론적인 접근법이 적용되어서 그럴지 모르겠다.

두번째로 놀란 것은 서인도제도의 발견으로 서양인들의 약탈과 질병으로 원주민의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더해서 금광의 개발 때문에 노동력이 농업에서 광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산업의 균형이 무너져 가속화시킨 점도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놀란 것은 서인도제도의 금의 발견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았을 스페인의 경우와 서로마제국 황제가 되기 위한 로비자금 때문에 막대한 빚을 지게된 프랑스의 경우를 비교할 때 금이 부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유입되는 금을 이용하여 주변국의 생산물을 샀는데 금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늘어났다.
하지만 수입위주의 경제와 국부의 유출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했다.
프랑스의 경우 빚을 갚기 위해 생산을 늘려서 산업을 장려했고 이를 통해 경제가 발전하여 아이러니하게도 '빚'이 '부'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놀란 것은 1745년의 영국의 '뱅크런'에 대한 영국민의 대처방식이었다.
당시 스튜어트 가문이 다시 왕위복귀하려는 시도 때문에 '영란은행'에 '뱅크런'이 발생했다.
'영란은행'은 '국가은행'이 아닌 '상인출자'에 의한 은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1천만 파운드 스털링의 자본금을 갖고 있던 '영란은행'의 대처방법은 고작 출금을 '6펜스'짜리 주화로 지불하여 시간을 끌어보겠다는게 전부였다.
이런 뱅크런을 해결한 것은 왕실도 아니고 런던의 상인들이 '영란은행의 크레딧'으로도 상품거래를 계속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뱅크런이 일어나면 상인들은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가치가 확실한 금으로 거래를 하는데 영국의 사례는 진짜 독특하고 대담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당시 경제학적 원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나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위기에서 인간의 본능보다 이성이 이겼다는 점은 놀랍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초반부는 조금 딱딱한 내용이라서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콩종크튀르(conjoncture)'라는 용어를 '국면전환'이라는 번역 대신 그대로 쓰는 바람에 일반인들이 적응하기는 좀 힘든 면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역자가 후기에 썼듯이 "재미가 없다면 그것은 역자가 아니라 원저자가 책임질 일이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번역에 신경 쓴 부분이 많이 보여서 후반부로 갈 수록 잘 읽히는 책이었다.
재미있는 내용의 책을 10년이나 늦게 보게 되면서 '역시 게으름은 후회의 씨앗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11월 3일 페이스북에서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