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테레비 [여왕의 교실(女王の教室)](2005년 7월 2일~2005년 9월 17일)(전 11회) vs. MBC [여왕의 교실](2013년 6월 12일~2013년 8월 1일)(전 16회)
집에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TV를 켜놓고 살다보니 이런저런 드라마들을 간간히 보게 된다.
덕분에 고현정이 나온 [여왕의 교실]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잘 알다시피 일본드라마 [여왕의 교실(女王の教室)](2005)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http://www.imbc.com/broad/tv/drama/qc/
물론 우리 나라에서 일본드라마 리메이크 해서 성공한 케이스는 김명민의 [하얀거탑](2007)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작품 [여왕의 교실]도 시청률에서 한자리수를 넘지 못했다.
물론 내일이 마지막이지만......
2005년에 이미 원작을 봤기 때문에 재탕이라서 그런지 원작의 감동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물론 2005년의 일본과 현재의 우리 나라의 교육현장의 차이점이 리메이크작에서 괴리가 발생하게 만들어서 이질감 때문에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에 있는 교직원 재교육센터가 우리 나라에는 없으니 주인공 고현정이 깜빵 갔다 온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교사 깜빵 출신이라니 좀 너무 한 것 같다.
원작을 보면서도 생각치 못했었는데 리메이크작을 보니 참 '불순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겠지만 주인공 '마여진' 내지 원작의 '아쿠츠 마야'가 만든 교육방식은 폴 윌리스(Paul Willis)의 [교육현장과 계급재생산(Learning to labor)](1989, 민맥)에서 이야기하는 '저항이론'을 도식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주인공이 의식하고 만든 사회이기 때문에 진정한 '제약'과 '간파'라고 할 수 없지만 형식적으로는 '수동적 피교육자'가 아닌 '능동적 피교육자'가 교육자인 주인공에 의해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제약'을 '간파'하여 저항한다는 방식에서는 같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원작에서 2003년부터 시작된 '유토리 교육(ゆとり教育)'이 한창일 때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https://namu.wiki/w/%EC%9C%A0%ED%86%A0%EB%A6%AC%20%EA%B5%90%EC%9C%A1
'유토리 교육'과 원작의 내용을 맞추어 원작이 '유토리 교육'에 어떤 자세를 갖는지 분석하기 어럽다.
(아마 특정 교육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서 보다는 항시적으로 존재했더 전반적인 일본의 교육상황을 비판하려 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교육현장과 계급재생산]에 나오는 내용으로 비교컨데 '유토리 교육'이 일정정도 '저항의식'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물론 일본에서 교육받지 않았으로 단춘한 추측일 뿐이다.
일본판의 경우, 화면의 구성과 더불어 다카라즈카 가극단(宝塚歌劇団) 출신의 아마미 유우키(天海祐希)의 약간 선이 강한 '오바'스러운 연기로 인해 학생들과의 긴장이 극대화되었다고 보인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판의 경우, 고현정과 아역들의 표정연기와 같은 잔잔한 연기력으로 긴장을 극대화 시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나면 폴 윌리스의 저서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8월 1일 페이스북에서 작성>
PS. 1989년 민맥에서 출판된 [교육현장과 계급재생산]은 이미 절판되었고, 새롭게 2004년 이매진에서 동일한 역자에 의해 [학교와 계급재생산]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