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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5. 11:28

[과학잡지 에피 4호 – 키워드 프랑켄슈타인](2018), 이음(총 22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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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잡지 에피(4호) - 교보문고

『에피』는 ‘과학비평’ 잡지로, 과학비평에는 “과학의 이모저모를 따져보고 헤아려본다” 정도의 뜻이 담겨 있다. 과학 이론을 검증하거나 기술의 성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맥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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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호 읽은지 언제라고 벌써 4호를 받아서 읽었다.
계간지이므로 눈 깜짝할 사이에 3개월이 갔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
회사 업무가 많이 진척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재미있었던 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정기구독으로 매분기 책을 수령할 때 어떤 내용일지 기대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발전없음을 보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번호의 키워드는 ‘프랑켄슈타인’이다.
사실 나는 소설을 ‘극혐’하는 경향이 있어서 잘 읽지 않는다.
역사소설을 제외한 창작소설로 마지막 읽은 것은 23년전 ‘겨우’ 읽은 최인훈의 [화두]이다.
(물론 에피에 나오는 단편 SF를 읽긴 하지만……)
원래 공상과학소설 계열은 더욱 ‘극혐’하여 읽지 않았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들 이야기를 중고등학교 때도 많이 들었지만 읽어본적은 없다.
이번 키워드인 ‘프랑켄슈타인’도 이야기와 패러디된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접했지만 실제 읽어본 적도 없다.
사실 읽지 않은 사람으로서 1900년대 작품이려니 생각했었는데 1800년대 작품이었다니 조금 놀랐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을 읽지 않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만,
‘프랑케슈타인’이라는 키워드는 저술 200주년의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시의적절’한 주제라고 느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변형된 인간,

다문화사회로 인해 ‘외래’한 인간 및 그들의 자녀,

과학적 혜택을 받았거나 혹은 받지 못한 장애를 가진 인간,

이념적으로 선명한 차이를 갖는 인간,
특히 요즈음 부각되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인간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논의 혹은 백안시가 팽배한 상황이다.
(‘프랑켄슈타인’에서 기술로 ‘인간’이 느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제외한 
이들에 대한 ‘이질감’의 영역으로 파악한 한정적 이야기이겠지만……)

이두갑의 “프랑켄슈타인, 낭만주의 과학의 이상과 좌절”은 짧지만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저작이 나올 수 있게 된 ‘생물학적’ 기술 수준과 시도를 설명해주고 있다.
질 르포어의 “[프랑켄슈타인]의 기묘하고 굴곡진 이력”은 저자인 메리 셸리가 저술할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다.
당시 활동하던 제네바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와 ‘노예제’에 대한 인식이 저작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위의 글들과 달리 윤신영의 “혼종 인류 시대는 새 신화학을 필요로 하는가”는
요즈음 활발히 연구개발되고 있는 이종동물간 장기이식, 3D 프린터 기술, CRISPR 기술을 통한

‘혼종’의 동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국내의 논의를 운만 띄운 점은 아쉽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제대로 논의 시작이 되지 않고 있다고 알고 있긴 하지만……)
소설가 김초엽의 “[프랑켄슈타인]을 쓰는 메리 셜리: 주체와 타자”에서는

본인이 앞에서 잠시 기술한 ‘이질적’ 상황을 작가가 겪었던 장애상황과 공학을 전공한 ‘여대생’의 사례를 접목하여 
소설에 적용된 ‘주류의 시선과 타자의 관점’을 추론하고 있다.

위의 “키워드 – 프랑켄슈타인”에 실린 4편의 글뿐만 아니라 
이선의 “개벽 이후”라는 SF와 “크리틱”에 실린 두 편의 글 역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키워드가 던지는 물음을 잘 이야기 해주고 있다고 본다.
이선의 “개벽이후”에서는 죽지 않은 사람이 죽었던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과
죽었던 가족이 돌아온 사람들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를 보여주어
극단화된 ‘혼종’의 사회를 ‘시각화’하려고 하였다.
전치형의 “운전대 없는 세계: 누가 자율주행차를 두려워하는가”와 임소연의 “언캐니 벨리에 빠진 성형 미인”에서는
현재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율주행과 성형이라는 ‘용인되는 이질감’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특히 성형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어서 후속 저작이 나오면 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켄슈타인’뿐만 아니라 지난 분기 과학계 최대 이슈였던
스티븐 호킹의 부고가 김상욱의 “스티븐 호킹은 정말 위대한 과학자인가?”라는 글로 실렸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중학생 때 억지로(?) 읽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글 내용은 스티븐 호킹의 이론의 중요성을 쉽게 설명해 주어서 ‘괜한 고생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전용훈의 “뉴턴, 호킹 그리고 최한기: 동서양의 ‘중력’ 이야기”에서 뉴턴과 최한기의 비교를 보고 
능력(?)도 안되는데 너무 근본적인 물음에 집착하여 연구하면 일종의 ‘사이비’로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너무 최한기를 비하한 듯 한데……)
연구에서 현재의 기술수준과 기술적 문제 해결 기대치를 설정하는 것이 ‘발전’의 주요 요소라고나 할까……

그 외에 지난호부터 시작한 최형섭의 “사물열전 2: 반도체 64K 디램”에서는
멀지 않은 역사인 반도체 개발사의 대강을 정리해주고 있다. 
글의 말미에, 편중되어 발생하는 경제문제 및 노동자 건강 착취의 문제를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개인적으로 짧은 글이라서 기술적 문제(광학기술 등)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책 처음에 나오는 “인터뷰 – 국회로 간 물리학자: 오세정의 ‘One-Way Street’”라는 오세정 의원의 인터뷰는 반갑게 읽었다.
직접 수업은 들어본적은 없지만 재수 때 신문기사에서 ‘실력위주의 교수평가’를 주장했던 것을 보고
뇌리에 계속 남아있던 분이셨는데 국회에 가서도 부조리를 없애려고 노력하신다고 하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프랑켄슈타인]을 읽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읽을 책이 이미 옆에 산더미라 다시 포기하게 되었다.

<2018년 6월 14일 페이스북에서 작성>